2017년 10월 12일 목요일




◆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9월 11일 탄생 100년을 맞았다.

마르코스가 권좌에서 쫓겨난 지 31년, 죽은 지 28년이 흘렀지만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놓고 필리핀 사회는 갈라져 있다.

마르코스 가족들은 이날 필리핀 수도 마닐라 국립 ‘영웅묘지’에 모여 마르코스를 추모했다. 마르코스의 고향인 필리핀 북부 일로코스 노르테주에서도 추모행사가 열렸다. 영웅묘지 밖에서는 마르코스 반대와 지지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마르코스 독재 치하 피해자들과 반마르코스 단체 회원 수백 명은 “마르코스는 추모할 만한 인물이 아니다”며 피켓 시위를 벌였다. 반면 마르코스 지지자 수백 명은 “마르코스가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추모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마르코스 고향에 특별 공휴일까지 선포하며 그의 탄생을 축하했다. 독재자를 미화한다는 반발이 일었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를 일축했다.

두테르테는 “많은 사람, 특히 일로코스 노르테주 사람들에게 마르코스는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자 영웅”이라며 “왜 이 문제에 대해 논쟁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작년 11월 마르코스 시신을 고향 마을에서 영웅묘지로 이장하도록 허용해 마르코스 독재 치하 피해자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마르코스의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59)는 “국가를 위한 아버지의 꿈과 비전을 상기하자”며 “그 꿈을 우리가 실현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게 하자”고 말했다.

마르코스는 1965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장기 집권을 위해 1972년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의 계엄 시절 고문과 살해 등으로 수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마르코스는 1986년 ‘피플파워’(민중의 힘) 혁명으로 사퇴하고 하와이로 망명해 1989년 72세를 일기로 숨졌다.



마르코스 가족들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 없이 ‘가문의 부활’을 모색하고 있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작년 5월 부통령 선거에서 ‘마르코스 향수’에 힘입어 레니 로브레도 현 부통령과 박빙의 대결을 벌였다. 그는 차기 부통령 선거나 대통령 선거를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사치의 여왕’인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88)는 현재 하원의원 3연임을, 딸 이미(61)는 일로코스 노르테주 주지사 3연임을 각각 하는 등 마르코스 일족은 권력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스트롱맨’으로 불리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이런 마르코스 가문의 ‘후견인’ 역할을 하면서 현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도 일고 있다.

마르코스 반대 운동을 주도하는 보니파시오 일라간은 “두테르테 정부가 마르코스 가문을 복원시키기 위해 무엇을 하든지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좌파 시민단체 ‘바얀’의 레나토 레예스 사무국장은 “마르코스 고향에 공휴일을 선포하며 마르코스의 약탈과 인권침해 전력을 눈가림하고 있다”고 두테르테 대통령을 비난했다.

최근에는 100억 달러(약 11조3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마르코스와 그의 가족들의 부정축재 재산 환수 방법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환수 재산이 약 34억 달러(3조8천억 원)에 그친 가운데 두테르테 대통령은 마르코스 가족들의 자발적인 재산 반납을 위해 과거 불법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야권과 인권단체는 ‘어불성설’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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